8.4.1 네트워크 폴리시의 필요성 (기본: 모든 파드 간 통신 허용)
쿠버네티스는 애플리케이션을 컨테이너화하고, 이를 파드(Pod)라는 단위로 묶어 클러스터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배포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강력한 오케스트레이션 플랫폼입니다. 이러한 쿠버네티스가 제공하는 네트워킹 환경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특별한 설정을 하지 않는 한 클러스터 내의 모든 파드가 서로 자유롭게 네트워크 통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입니다. 즉, 네임스페이스(Namespace)가 다르더라도, 서로 다른 노드(Node)에 배포되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는 모든 파드가 다른 모든 파드의 IP 주소로 직접 네트워크 요청을 보내고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개방형(open) 또는 평평한(flat) 네트워크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에서 각 집(파드)들이 서로의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열어두어, 이웃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개발 초기 단계나,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매우 작은 규모의 내부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개방성이 애플리케이션 간의 연동을 단순화하고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복잡한 방화벽 규칙이나 네트워크 격리 설정을 신경 쓰지 않고도 각 마이크로서비스들이 서로 쉽게 통신하도록 구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으로 모든 통신을 허용하는” 정책은 애플리케이션의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들이 함께 운영되며, 특히 보안이 중요한 데이터를 다루거나 외부의 공격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프로덕션 환경에서는 심각한 보안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아파트 단지의 한 집(파드)에 도둑(악성 코드 또는 공격자)이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도둑은 다른 모든 집들의 문도 열려있기 때문에 단지 내의 다른 집들로 쉽게 이동하며 추가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쿠버네티스의 기본 개방형 네트워크 모델 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안상의 문제점과 네트워크 폴리시가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공격 확산(Lateral Movement)의 용이성: 만약 클러스터 내의 특정 파드가 보안 취약점으로 인해 외부 공격자에게 침해당하거나 악성코드에 감염되었을 경우, 이 파드는 마치 교두보처럼 활용되어 클러스터 내의 다른 중요한 파드(예: 데이터베이스 파드, 인증 서비스 파드)로 쉽게 접근하여 추가적인 공격을 시도하거나 민감한 정보를 탈취할 수 있습니다. 모든 파드 간 통신이 기본적으로 허용되어 있기 때문에, 공격자는 내부 네트워크를 자유롭게 탐색하며 공격 범위를 넓혀갈 수 있습니다.
- 최소 권한 원칙(Principle of Least Privilege) 위배: 보안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는 각 구성 요소가 자신의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권한과 접근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파드가 서로 통신할 수 있다면, 프론트엔드 웹 서버 파드가 굳이 직접 통신할 필요가 없는 내부 결제 처리 파드나 사용자 개인 정보 데이터베이스 파드와도 네트워크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불필요한 접근 경로를 열어두어 잠재적인 보안 위험을 증가시킵니다.
- 멀티테넌시(Multi-tenancy) 환경에서의 격리 부족: 하나의 쿠버네티스 클러스터에서 여러 팀, 여러 프로젝트, 또는 여러 고객의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운영하는 멀티테넌트 환경에서는 각 테넌트(tenant) 간의 네트워크 격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A팀의 애플리케이션 파드가 B팀의 애플리케이션 파드와 아무런 제약 없이 통신할 수 있다면, 한 테넌트의 보안 문제가 다른 테넌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서로의 데이터를 의도치 않게 열람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 컴플라이언스 및 규제 준수 요구사항: 특정 산업(예: 금융, 의료)이나 데이터 보호 규정(예: GDPR, HIPAA, PCI DSS)에서는 민감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스템에 대해 엄격한 네트워크 접근 제어 및 격리 조치를 요구합니다. 쿠버네티스의 기본 네트워크 모델만으로는 이러한 규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네트워크 폴리시(Network Policy)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됩니다. 네트워크 폴리시는 쿠버네티스 클러스터 관리자나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선언적인 방식(declarative way)으로 특정 파드 그룹(보통 레이블 셀렉터를 통해 선택됨)에 대해 어떤 다른 파드나 네트워크로부터 들어오는 트래픽(Ingress)을 허용하고, 어떤 다른 파드나 네트워크로 나가는 트래픽(Egress)을 허용할지를 세밀하게 정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쿠버네티스 API 리소스입니다.
네트워크 폴리시를 적용하면,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허용”하는 정책에서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차단하고, 명시적으로 허용된 통신만 허용”하는 “기본 거부(default deny)” 또는 “화이트리스트(whitelist)” 기반의 보안 모델로 전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마치 아파트 단지의 모든 집들이 평소에는 문을 잠가두고, 오직 허가된 방문객(정의된 네트워크 폴리시 규칙에 맞는 통신)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네트워크 폴리시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보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 마이크로서비스 간 통신 격리: 각 마이크로서비스는 오직 자신이 직접 통신해야 하는 다른 특정 서비스하고만 네트워크 연결을 맺도록 제한하여, 불필요한 상호작용을 차단하고 각 서비스의 독립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 네임스페이스 기반 격리: 서로 다른 네임스페이스에 배포된 애플리케이션들 간의 통신을 기본적으로 차단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명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멀티테넌시 환경에서의 보안 경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 계층형 보안(Defense in Depth) 강화: 애플리케이션 레벨의 보안 조치와 더불어 네트워크 레벨에서의 접근 제어를 추가함으로써, 여러 계층에 걸쳐 보안을 강화하는 심층 방어 전략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네트워크 원칙 적용: “아무것도 신뢰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검증한다”는 제로 트러스트 보안 모델의 핵심 원칙을 쿠버네티스 내부 네트워크에 적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즉, 파드 간 통신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는 신뢰하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통신 경로만을 명시적으로 허용하도록 정책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쿠버네티스의 기본 네트워크 모델은 개발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실제 운영 환경, 특히 보안이 중요한 시스템에서는 반드시 네트워크 폴리시를 통한 세밀한 접근 제어가 필요합니다. 네트워크 폴리시는 클러스터 내부 네트워크의 보안을 강화하고, 애플리케이션을 잠재적인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며, 다양한 규제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는 데 있어 필수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클라우드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모든 개발자와 운영자는 네트워크 폴리시의 개념과 필요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환경에 맞는 적절한 보안 정책을 수립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